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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03.14] ‘전통의 재창조’ 한국미술거장 4인 한자리
작성자관리자 @ 2019.03.25 15: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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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솔거미술관 2019 특별기획 전통에 묻다’

 

‘전통의 재창조한국미술거장 4인 한자리

 

 

박대성 이왈종 황창배 윤광조’ 4인전 최초 기획18일 오프닝

 

 

혁신, 중도, 파격, 자유 등 시대정신 담은 대표작 44

 

 

 

전통의 재창조라는 뚜렷한 주체의식으로 자신만의 고유영역을 확장해온 한국미술계 거장 4인의 작품이 경주솔거미술관에 전시된다.

 

()문화엑스포(이사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솔거미술관에서 2019특별기획전 전통에 묻다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개막행사는 18일 오후 2.

 

참여 작가는 혁신적인 감각으로 수묵담채의 현대적 해석을 이끌어낸 박대성(74), 특유의 화사한 색감으로 한국화의 영역을 넓혀온 이왈종(74), 파격과 일탈을 통해 동서양의 경계를 허문 고() 황창배(19472001), 현대도자 예술의 전업작가 1윤광조(73) 작가다.

 

이번 전시는 4인의 작가가 화단의 주목을 받은 지 40여년이 되는 시점에서 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한국현대미술에서의 전통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를 반추해보고자 마련했다.

 

4인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독보적인 작가들로, 이들을 빼고는 한국 현대미술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 문인정신의 혁신적 탐구, 박대성(1945)

박대성 작가는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담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혁신적 감각을 가진 작가로 꼽힌다. ‘실경산수의 독보적 존재로 일컬어지며 이번 전시에는 노매’, 큰 병풍(129×118cm) 3점 등 16점을 내놓았다.

 

자재함의 정신으로서 중도(中道), 이왈종(1945)

이왈종 작가는 파격을 통해 한국화의 전통을 인지시킨 작가로, 제주의 자연풍광과 일상의 희로애락을 특유의 해학과 정감 어린 색채로 표현한 연작 제주생활의 중도로 유명하다. 최근작을 비롯해 14점을 내놓았다.

 

물질의 경계를 넘는 파격의 전통, 황창배(19472001)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해 한국 현대화단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고() 황창배 작가는 한국화의 테러리스트로 불리며 1970~80년대 황창배 신드롬을 일으킨 스타작가였다. 수묵과 채색의 이원화 구도를 허문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 8점이 전시된다.

 

전통에서 자라난 자유의 선(), 윤광조(1946)

전통의 분청사기를 현대 도예로 재구성한 윤광조 작가는 런던 대영박물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을 만큼 한국 현대 분청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물레를 과감히 버리고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만들어간 대표작 6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조은정 회장(미술평론가)해방세대인 이들은 등장부터 큰 관심을 받았고 전통의 재창조라는 주체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고민해왔다그들이 전통과 현대성이라는 끊임없는 물음 속에서 만들어낸 독창적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미술계 대가인 이들 4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회를 연 것은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처음이며 한국 미술계에서도 의미 있는 전시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오는 915일까지 열리며 운영시간은 오전 9~오후 6시이다. 입장료는 어른 3,000, 어린이청소년 2,000. 자세한 사항은 경주솔거미술관(www.gjsam.or.kr/054-740-3990)으로 문의하면 된다.

 

 

[참고자료]

경주솔거미술관 2019특별기획전

전통에 묻다

In Dialogue with Tradition

 

한국 문인정신의 혁신적 탐구, 박대성(1945- )

자재함의 정신으로서 중도(中道), 이왈종(1945- )

물질의 경계를 넘는 파격의 전통, 황창배(1947-2001)

전통에서 자라난 자유의 선(), 윤광조(1946- )

 

2019. 3. 5() ~ 9. 15()

경주솔거미술관

 

전시문의 : 담당자 박갑순 054-740-3062, 010-4565-9773

기획자 조은정(미술평론가) 010-8717-2704

 

. 기획배경

동시대를 산 작가들에게서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공통점이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담론 중 하나는 전통론이다. 그것은 반만년 역사라는 자긍심으로 일제강점기를 관통하여 올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동력이었다. 전통은 백의민족이 강조되어야 했던 정치적 상황과 분리하여 상상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광복 직후 민족미술론이나, 왜색극복으로서 민족미술의 회복 등은 모두 전통과 불가분의 관계 아래 이해되었으며, 식민지를 지나온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된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전통이 외부와 우리의 다름을 용인하는 도구로 작동한 것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에 기인한다. 사회통제의 권력적인 시스템에 동원된 전통과 민족론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내부에서 전통이 무엇인가라는 것은 흔들리는 현대미술의 지표 아래서 유효했다.

이른바 해방세대 즉 1945년 직후 태어난 작가들이 중견으로 도약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80년대 미술에서 전통은 전통의 재창조라는 뚜렷한 주체의식에서 발원한 것이었다. 그것은 민족, 민중에 대한 인식과 함께한 것이기도 했고, 국내 중심의 미술에서 세계미술에 대응, 대항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다. 전통은 과거의 완벽한 시대의 미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현대미술에서도 그 힘은 유효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번 전시에 함께 하는 박대성, 이왈종, 윤광조, 황창배는 바로 이러한 동시대를 함께한 이들이다.

 

. 전시개요

천년고도 경주는 문화와 전통의 고장이다. 경주솔거미술관은 치열한 전통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미술의 독보적 위치로 나아간 4인의 작가를 초대하였다. 1970년대부터 과연 현대미술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안고 한국화 분야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3인의 작가와 전통과 현대 도예의 가교로서 독보적 위치를 점한 1인의 작가가 그들이다. 이들은 한국의 전통을 찾기 위한 부단한 사유와 기능과 도구적인 수련뿐만 아니라 옛 선비나 화가처럼 세속을 떠난 자연의 공간에 거주하며 치열한 작업의 과정을 통하여 자신만의 작가양식을 이룩한 이들이다.

전통이란 화두를 걸머진 채 세계에 눈뜬 한국현대미술의 변화하는 노정에서 작가적 양식을 이룩한 3인의 한국화는 각기 다른 장르인양 보인다. 작품 하나하나에 관통하는 정신성과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윤광조의 도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대성의 작품 앞에서 동양화의 재료성이 극대화한 지점을 만난다. 이왈종의 유쾌한 화면 안에서는 물질과 소재의 재료성이 사라지고 균형이라는 오래되고도 유효한 가치가 목도된다. 황창배의 표현주의적 화면 안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경계 없음의 현대성을 만난다. 윤광조의 작품 앞에서 이것을 분청사기라 일컫는 것도 그릇이라 일컫는 것도 맞지 않는 그저 현대 작품 그것을 보게 된다. 전통은 그렇게 강조되는 민족성과는 다른 것으로 이들의 작품 안에서 삶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내는 힘의 정신으로 그리고 가치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 작가 소개

 

1,5전시실:한국 문인정신의 혁신적 탐구, 박대성(1945- )

박대성은 국전, 중앙미술대전 등을 통해 화려하게 등장하였으며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60년대 이후 한국화단에서는 이채적인 작가였다. 그는 몇몇 사사받은 스승의 영향보다는 독학이 강조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이른바 수묵담채의 실경산수는 화단에 등단한 이후 박대성을 수식하는 언어였다. 이는 한국화의 현대성을 이루기 위해 수묵화로 진행한 추상의 수묵운동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그리하여 90년대 중반 그는 실경산수의 독보적 존재로 평가되었다.

수묵담채의 현대적 해석, 전통 동양화의 전통과 혁신적 감각을 공유한 작가로서 박대성은 호를 딴 소산화풍(小山畫風)’을 이룩한 작가로 통용되었다. 그는 동시대 미술의 주요 담론인 전통의 계승 문제에 천착하며 일찍이 개인적 양식을 이룩한 것이다. 그는 90년대 초에는 다양성을 위해 색채를 가미하다가 90년대 중반 이후 수묵에 집중하였다.내면화된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기에 수묵이 더 적당하다는 작가의 말은 수묵에서 문인화적 전통의 언어를 발견하였다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90년대 중반 경주를 자주 드나들며 수묵으로 경주를 그려낸 것과 더불어 시구(詩句)가 그림에 들어간 문인화적인 표현을 보여주고 있음에서도 드러난다.

박대성은 70년대와 80년대의 치열한 현장에서 전통과 현대성을 자각한 작가로서 실경이라는 전통의 세계와 수묵이라는 정신의 세계를 조화시킨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가 추구한 전통은 한국화의 도구적 전개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2전시실: 자재함의 정신으로서 중도(中道), 이왈종(1945- )

국전에 작품을 한 점만 출품할 수밖에 없어서 이우종이라는 본명과 이왈종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하였는데 이왈종의 이름으로 출품한 작품만 입선하여 화명을 이왈종이라고 하였다는 일화처럼그의 작품은 애초에 예술과 실생활의 욕망 중간에서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일찍부터 파격을 통해 오히려 한국화의 전통을 인지시킨 작가로 거론된다.

한국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국토성, 즉 실경이란 현실인식과 더불어 인간의 형상을 넣어 이야기 구조를 갖는 그의 화면은 동시대 실경 혹은 추상과는 다른 영역의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틀을 일찍이 벗어남으로써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그의 화면은 무엇에 얽매임이 없음과 일탈(逸脫)이라는 일상을 벗어난 생명력을 향한 에너지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것은 전통이라는 형식을 깸으로써 전통의 정신에 다가가는 자기확인의 방법이다.

동네풍경, 시장풍경, 도시 등 자신의 삶의 주변을 제재로 삼은 것은 생동감과 활력이 넘치는 생활의 모습을 나타내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동시대 수묵운동의 사실적 도시풍경이나 현실인식의 실경산수와는 분명 다른 맥락에서 그는 삶을 성찰하는 도구로 현실을 한국화에 끌어들였다. 그에게 있어 생생함이란 바로 같은 산수화지만 현대적인 주택과 고속도로, TV 안테나 등이 등장하는동시대의 현대성을 의미하였다. 자칫 자연의 관조적 대상으로서 이해되는 공간이 아닌, 실제 삶이 담기는 공간으로서의 산수는 동시대의 실존을 담은 것이었다.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가르지 않고 삶의 모습이 곧 예술인 것이 이왈종의 화면이며 삶과 예술을 일치시킨 전통의 사상 아래 있다.

 

3전시실:물질의 경계를 넘는 파격의 전통, 황창배(1947-2001)

망친 그림을 물에 빨았다가 그것을 작품으로 낸 <국전>에서 큰상을 받았다는 일화는, 황창배의 작업방식이 새로운 회화적 체험을 위해서는 관습적인 표현방법에서 탈피하였음을 알려준다. 또 새로운 조형질서를 찾기 위해서는 즉흥성을 띠고 있음도 시사한다.

파격과 일탈로 설명되는 그의 작품은 서예와 전각까지 전통 서화가가 갖추어야 할 항목을 두루 섭렵하였던 이력에 비추어 볼 때, 분명 자신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술을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관전과 민전, 전통의 계승과 일탈이 용광로처럼 이글대던 당시 화단에서 그의 작품은 세상에 나올 때마다 주목받았고, 그는 언제나 한국화의 재료가 아닌 정신에서 전통을 찾았다. 전통이란 매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신으로서 가능하다는 제안은, 바로 서양의 재료로도 동양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현대미술로서 한국화가 자생하려면 먹과 화선지, 채색이라는 전통 한국화의 틀을 뛰어넘어야만 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크릴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하였으며 평면의 한국화를 3차원의 공간형태로 구축한 입체작업까지 영역을 확대하였다. 재료에 따라 서양화와 동양화, 회화와 조각 같은 장르를 구분하던 틀에서 벗어나 서구적 조형개념을 한국화에 직접 실현시켰던 것이다.화면 안에 기호를 넣기도 하고, 글씨로 사의를 전하기도 하며 표현주의적인 붓질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양화와 동양화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느 것이기도 한 경계를 넘는 그의 작품은 당시에는 파격이었으나 오늘날은 현대성 그 자체이다.

 

4전시실: 전통에서 자라난 자유의 선(), 윤광조(1946- )

그의 분청사기는 형태로만 새로움을 추구하는 백자나 기교로 흐를 수 있는 청자와 달리 소박함, 친근함, 자유스러움과 같은 특성에 작가 개인의 성향이 드러나는 예술적 상황을 담보한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도자예술은 전통의 현대적인 계승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공유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던 당시, 그는 존재 자체로도 주목받았다. 도예 예술가의 탄생이었다. 도자기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한국에서 정작 도자예술을 전통의 현대적 계승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가들을 많이 갖지 못한 화단에서 윤광조의 등장과 위치는 독보적일 수밖에 없었다.

분청사기에서 발견하는 도공의 자유로운 문양과 단단한 조형미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오래 전부터 천착(穿鑿)한 그의 세계였다. 전통 분청사기의 세계에서 이라는 문양의 방식을 찾아내어 새로움의 요소로 삼은 그의 작품에 대해 미술사학자 김원룡은 윤씨의 선문(線紋)은 그 정신이 전통적이면서 작품으로서의 세계는 순수하게 자기가 확립되어 있다.”고 하였다.

단선이 반복되는 표면에 시구를 적어 넣기도 하고 소박한 초화무늬를 그려넣기도 한 그의 도자는 하나의 화면처럼 내용을 담고 있었다. 90년대 중반 경북 안강으로 작업실을 옮긴 그는 더욱 적막함을 찾아 도시와 떨어진 곳에 위치함으로써, 은둔의 예술가적 위치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물레 성형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이른바 표현주의라 칭할 수 있는 물질과 표면의 그림에서도 윤광조만의 작품세계를 펼쳤다.전통을 계승하되 쓰임새를 버린 도예, 그토록 현대도예가 지향하던 지점에 바로 윤광조가 이르러 있었다.